서정윤 시인의 이 시집은 언제 부터인가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연습장 표지에 실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다름이 아닌 오오타 케이분의 미소녀 그림과 함께 말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오오타 케이분의 일러스트와 '홀로서기'는 정말 잘 맞는 궁합이었다. 그의 일러스트를 보면 홀로서기가 생각났고, 홀로서기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오오타의 일러스트가 따라다녔으니 말이다.
연습장 표지로 그의 시가 알려지면서 청하출판사에는 재판을 요구하는 서점들의 전화가 쉴세 없이 걸려왔고, 곧 서정윤의 홀로서기는 베스트셀러라는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 오르게된다. 국내 출판계에서 지금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인 단일 시집 최초로 100만부 판매라는 대기록과 얼마후 150만부 판매. 2002년 11월에는 소설도 넘기 힘들다는 300만부의 판매까지..
당시에서는2천부 이상 팔리지 않는 시집이 부지기수였음을 생각할때, 그야말로 초 베스트셀러였다.
홀로서기는 1987년 몇 백권의 초판을 찍어낸 이래 그해에만 60여만 부가 재판되었다. 덕분에 다 쓰러져가던 청하출판사는 월세도 못내던 작은사무실을 버리고 출판사빌딩을 신축하기도 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근처에 다른 빌딩도 하나 매입했다던데 ..
지금도 궁금한 것은 그 연습장 표지에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실은 인물이 누굴까 하는 것이다.
청하 출판사 사장이 나름대로 고육지책을 펼친 것인지, 영남대 재학시절 동문이 연습장 제조업을 하다가 우연히 이 시집을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짜낸 것인지, 아무튼 오오타의 화집에 약간의 시(詩)가 실린 것이 홀로서기에 이어진것은분명한데...
이 부분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궁금하기만 하다.
참고로80년대학생들이 사용하던 연습장의 표지는 접착식 앨범 처럼 되어있어 각자의 취향에 맞게표지를 꾸밀 수 있었다.
이후, 청하 출판사 사장이나 서정윤 시인이 오오타 케이분에게 저작료를 지불했다거나, 직접 만나 거하게 한턱냈다거나 하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적어도 마음속으로는고마움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일지도...)
* 현재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는 문학수첩에서 발간한다.